산상수훈, 제자의 삶: 나는 어떤 길 위에 있을까?
본문 : 마태복음 7장 13~14절
설교자 : 대학1부 김지수 목사님
마태복음 7장 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태복음 7장 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의 결론에 해당한다.
이전까지의 가르침을 듣고 난 후에 예수님은 질문하신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듣고 너희는 어떻게 살겠느냐?'
즉,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것에 참여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신다.
이러한 초대를 받고도 거절하는 사람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앎에도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은 소위 '멍청이'다.
오정현 담임목사님께서도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회색지대의 사람들'이라고 종종 말씀하시지 않던가?
아래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은 '복'이고, 그렇지 않은 삶은 '저주'라고 한다.
신명기 11장 26절: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명기 11장 27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신명기 11장 28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도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을 대조해서 설명하신다.
여기서 '협착하다'라는 단어는 수동태 분사형으로 쓰였다.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한데, 이는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 길을 두고 비난하였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즉,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쉽지 않게 될 것이며 세상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생명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없지 않고 '적다'라고 한다.
한편, 멸망의 길은 넓다고 한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찾는 사람이 많고, 겉보기에 좋아보이는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길을 두고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물으신다.
그러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임하기를 원한다면 자연스레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인간은 옳은 길을 알면서도, 옳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믿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그러할 때 승리를 거저 주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아래와 같이 말하는데, 주변 나라들의 풍요로움을 두고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호수아 24장 15절: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명확한 대조가 등장한다.
시편 1편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편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편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4절: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편 1편 5절: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편 1편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오늘 대예배의 본문에서도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 대조된다.
이사야 35장 8절: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아래의 요한복음 구절에서는 두가지 포인트에 집중하라.
1)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 수 있다.
2) '예수께로 나아가는 자'는 주리지 않을 테니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6장 3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장 36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6장 37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장 38절: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6장 39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생명의 길인가, 멸망의 길인가?
우리는 스스로 세상이 보고 부러워할만한 큰 길 위에 서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당신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더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정말 세상이 보고 '왜 그렇게 사냐 '라고 할만한 '좁은, 생명의 길'에 서있는가?
청년 사역을 하다 보면 안타깝게 여겨지는 두 부류가 있다.
1) 자기 스스로 생명의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하는 부류 (이런 자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없다.)
2) 의심에 의심을 더하는 부류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해도, 자신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신앙'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하게 '믿으라'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 말씀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돌아와서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굉장히 엄중한 문제다. 소위 내 영혼의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내 영혼이 생명을 얻느냐, 멸망을 얻느냐에 대한 결과가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당신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길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걷는 길이라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걷겠다 "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세상과 동일하게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서 죽음에 이르겠는가?
어디로 가야 생명이 있고, 어디로 가야 멸망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멸망의 길을 택하지 않으며, 생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당신이 진정으로 '생명'에 대해 알고 있는데도, 주변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에게
"그래, 멸망의 길도 나쁘지 않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는 인생이 편하고, 어떤 어려움도 없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당신이야말로 넓디넓은 길을 걸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당신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왜 잘 안될까요"라고 스스로 말하며 고민하고 살아간다면 협착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좁은 길은 어렵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삶을 기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아티스트
- 잔치공동체
- 앨범
- Before Him
- 발매일
- 2022.11.27
나는 아흔아홉 마리 양 같아서
주의 사랑을 몰랐죠
무리 속 가장 깊숙이 숨어서 사랑 아는 척 살았죠
잃은 양 찾는 주님의 시선이 무리 속 나를 찾았네
천하보다 귀한 나의 사랑아 너는 나의 사랑을 아니
주의 사랑 언제나 나를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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