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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ermon Note

3.5 사랑의교회 대예배 & 대학1부 설교

by SeolLab.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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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찬양대 찬양: 주에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Thus Far has the LORD Helped Us"
(사무엘상 7장 2~14절) 오정현 목사님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삼상7:2-14)

2 And it came to pass, while the ark abode in Kirjathjearim, that the time was long; for it was twenty years: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after the LORD.
3 And Samuel spake unto all the house of Israel, saying, If ye do return unto the LORD with all your hearts, then put away the strange gods and Ashtaroth from among you, and prepare your hearts unto the LORD, and serve him only: and he will deliver you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4 Then the children of Israel did put away Baalim and Ashtaroth, and served the LORD only.
5 And Samuel said, Gather all Israel to Mizpeh, and I will pray for you unto the LORD.
6 And they gathered together to Mizpeh, and drew water, and poured it out before the LORD, and fasted on that day, and said there, We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And Samuel judged the children of Israel in Mizpeh.
7 And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at the children of Israel were gathered together to Mizpeh,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nt up against Israel. And when the children of Israel heard it, they were afraid of the Philistines.
8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id to Samuel, Cease not to cry unto the LORD our God for us, that he will save us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9 And Samuel took a sucking lamb, and offered it for a burnt offering wholly unto the LORD: and Samuel cried unto the LORD for Israel; and the LORD heard him.
10 And as Samuel was offering up the burnt offering, the Philistines drew near to battle against Israel: but the LORD thundered with a great thunder on that day upon the Philistines, and discomfited them; and they were smitten before Israel.
11 And the men of Israel went out of Mizpeh, and pursued the Philistines, and smote them, until they came under Bethcar.
12 Then Samuel took a stone, and set it between Mizpeh and Shen, and called the name of it Ebenezer, saying, Hitherto hath the LORD helped us.
13 So the Philistines were subdued, and they came no more into the coast of Israel: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against the Philistines all the days of Samuel.
14 And the cities which the Philistines had taken from Israel were restored to Israel, from Ekron even unto Gath; and the coasts thereof did Israel deliver out of the hands of the Philistines. And there was peace between Israel and the Amorites.
(1 Samuel 7:2-14, KJV)



부흥의 한 역사에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오늘 본문의 미스바 사건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에 회복을 넘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지난주에는 기드온(사사기 7장)을 다루었고, 오늘은 사무엘(사무엘상 7장)을 다룬다. 미스바에서 일어난 대부흥과 각성이 일어났고, 이를 두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의미의 '에벤(돌)에셀(도움)'로 불렸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시편 54편 4절: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시편 121편 2절: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사도행전 26장 22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오늘 본문 사무엘상 7장 2절에 보니,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출전한 전투에서 궤를 잃어버린 이후 기랏여아림에 방치된 상황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신들을 섬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무엘상 7장 3절: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
"사무엘상 7장 4절: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복수표현)과 아스다롯(이 말 자체가 복수다.)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하나님은 우상 섬기는 인간을 징계하신다. 구약에서는 항상 나타나는 징계 패턴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자, 야곱도 라반에게 속아 넘어갔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을 팔아넘겨지자, 나중에 형들이 요셉 밑에 무릎을 꿇게 된다.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하셨으나, 순종하지 않자 아말렉 군대에 의해 죽임 당한다. 하나님의 징계 패턴: "그럼 너도 당해라." (우리가 당황스러울 정도의 징계패턴이다.) 물론 신약시대에는 십자가의 은혜가 있기에 이런 패턴이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징계패턴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일을 보여주는데, 차차 알아보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도록 했다. (6절에, 1)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고, 2) 미스바에서 종일 금식하고 여호와께 범죄 하였다고 자복하며 회개했다. ) 물을 길어 붓는다는 건, 자기 절제선언이다. 생명의 물을 부어 내 영혼의 파산 상태를 선포하며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을 말한다. 금식은 생명 보존에 가장 중요한 필수품을 박탈한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내가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 결고, (7장 7절) 블레셋 사람들, 블레셋들의 방백들(블레셋의 장군들이 총동원되었다고 보는 번역본도 있다.) 치러 올라왔다. 당시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화, 블레셋은 철기문화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칫 전멸할 위기에 놓였다. 물 붓고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더 큰 위기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이다.

간절히 간구하였으나 예기치 못한 어려움(내 능력의 임계치를 넘는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더 큰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워 죽을 판인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에게 '쉬지 말고 기도해 달라'라고 부탁한다.
이에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무엘이 점잖은 사람임에도 이런 위기 앞에 부르짖었던 것을 기억하라. 사람은 자신의 크나큰 위기 앞에 이렇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10절,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들끼리 서로 헤매다가 다 패하게 되었다. 놀라운 에벤에셀의 은혜가 임한 것이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가브리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다. "내 종 사무엘이 나의 도움이 없으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죄를 자복하고 도움을 구하고 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러니 내 불병거, 불전차와 불마를 가져오너라. 내가 하늘에서 큰 불을 내려서 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고 내 백성을 돕겠다."
우레소리, 불이 내려오는 이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어떻게 이겼을까? 궁금했다. 사무엘상 초반부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간절히 기도했더니 사무엘상 2장 10절에 한나는"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라는 기도를 한다. 이에 한나의 기도가 아들 사무엘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응답받는다. 즉 에벤에셀 하나님의 영광이 그 현장에 드러난 것이다. 부모는 죽어도 부모가 드린 기도는 죽지 않는다. 육신의 어머니 한나는 죽어도 그가 남긴 영적 유산, 기도는 죽지 않는다.
부모의 공덕이 좋아야 자식이 성공한다는 타 종교의 설명과 동등한 것으로 이 말씀을 받지 말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에벤에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에, 그 기도에 힘이 있는 것이다.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삼상 7:13~14)"
이 말씀은 개인의 에벤에셀이 국가의 에벤에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1절이 우리나라에 없었다면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이 날을 기린다는 건, 이 운동이 절대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1절 사건을 위한 민족 대표단 33인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16명이었다. 3.1 운동 거점 지역의 75%가 교회에서 일어났다. 3.1 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일이다.
3.1 운동에 힘입어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는데, 당시 상해 임시 정부 선언문 중에는 '우리는 조국 조선의 정치적 민족적 자주독립만이 아니라, 신국을 건설하려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주독립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이 땅가운데 건설되길 기대하는 바람이 이 선언문에 담겼다. 엄마는 죽어도 엄마의 기도는 남는다. 과거가 현재가 된다. 과거의 은혜가 현재의 은혜로, 현재의 은혜가 미래의 은혜를 보장한다.



예레미야애가 2장 19절에,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에 남겨 둔 것 하나 없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 에벤에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를 향한 최고의 도움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죄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다고 감사하고 끝날 때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된다. 내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면, 내가 지금 짓는 죄가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기억하라. 회개는 단순한 게 아니라, 예수님께 상처 입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영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떤 것이든. 이미 우리의 삶이 망가졌을수록, 이미 엎질러진 물일수록 더욱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 전 세계가 잘못한 이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더 순결하고 가정을 지키고, 거룩을 사모해야 한다.





"Love and Romance: 1박 2일에 담긴 의미"
김지수 강도사님(삼하 13장 10-19절)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삼하13:10-19)

'선섹 후사'(성관계를 먼저 갖고 사귀기를 뒤늦게 결정하는 것을 이르는 말). 자유분방한 연애를 지향하는 말.
오늘날을 두고 흔히 '육체의 시대'라고 말한다. '육체의 시대'는 육체를 써서 하는 노동과 출산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늘날 육체를 쓰는 것은 몸을 성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cf)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는 부부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커플 사이에서의 성관계를 그린다.
우리도 은연중에 연애를 하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리는 것처럼 뜨겁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 군대에서 단골질문은 주변에 여자가 있냐는 질문이다. 군대에서는 혼전 성관계를 자랑으로 여긴다.
이 시대는 성관계에 대해 '쉬쉬'하며 입 밖으로 내지 않지만, 문란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
크리스천조차 혼전성관계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 있는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 혼전성관계가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지난 본문 가운데 암논은 병이 났다고 했다. 사랑할 수 없는 현실에. 그런데 그는 억지로 혼전 성관계를 가진 후에 미워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삼하 13:15)"
<한 남자가 여성을 병을 얻을 정도로 사랑했는데, 성관계 이후에 미워하게 된 과정> - 이는 많은 남성들이 경험한 과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중에 이혼을 생각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연애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사랑이 영원히 똑같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20대에, 대부분 형제들이 성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자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성관계를 하고 나면 자신의 순결을 형제에게 줬기에 더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많은 형제들이 성관계 이후에 사랑이 식는다. 남자는 단순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면 상대에게 관심을 갖지 못한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관계에서 '이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모두가 스스로 해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짝지어주신 배우자는 한 명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배우자와 성관계를 맺음으로 풍성함을 누리기 원하신다. 세상이 '경험해 봐야 더 잘한다'는 말에 속지 말라.
왜 속지 말라고 하냐고? 혼전 성관계가 왜 진리일 수 없냐고? 이 세상에 초콜릿이 하나뿐이라면 그것을 먹고 '맛있다'라는 결론으로 끝나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초콜릿들을 두고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속궁합을 따지는 행위나 혼전성관계에는 진정한 '만족'이 없다. 결국 하나님께서 한 배우자를 만나 남자와 여자 모두가 성적인 만족을 누리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가 서툴러서 첫날밤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혹 우리 중에 이미 혼전 성관계를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도 낙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남자와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그와 같은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전에는 그런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된다.
베드로전서 2장 10절 말씀을 기억하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 2:10)

Which in time past were not a people, but are now the people of God: which had not obtained mercy, but now have obtained mercy. (1 Peter 2:10, KJV)



남자든 여자든 받은 상처에 대해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곤 하지만 전 남자 친구, 전여자 친구와 했던 일들, 보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그 기억들이 지금의 배우자에게도 투영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정리하자.



바라기는 만나게 될 배우자와 성을 누리게 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오직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때에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 (동물은 발정기기 아니면 성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건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신 건데, 방종하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자유의지를 통해 더 뜨겁게 사랑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QnA
Q:그러면 결혼 전까지 성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A: 최대한 결혼을 빨리 하는 게 좋다. 취업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다 보니 결혼이 늦춰진 거지, 사실 빨리 하는 게 좋다. 결혼을 당장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cf) 포르노는 여성(또는 남성)을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성적인 욕구를 푸는 상대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대원의 기독교 심리학 교수님은 정 참을 수 없으면, 자위를 하되, '몽정'을 통해서라도 욕구를 해소하라고 했다.


Q: 상대가 스킨십을 너무 하고 싶어 하고, 너무 들이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 현실적으로 헤어지길 권한다.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대이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겉모습에 속지 않길 원한다.


Q: 스킨십을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  
A: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정도까지.


Q:이미 성관계를 해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결국은 죄를 끊어내는 방법과 똑같은 것 같다. 죄를 짓는 것을 자각했다면 이제부터는 짓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상대방도 이것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런데 상대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결혼 후에 어떤 태도로 나의 결정을 받아줄 것인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Q: 혼전순결로 결혼까지 가는 사람의 수가 많나?
A: 그렇다. 많다. 그 길을 기대해도 좋다. 그러나 내가 준비되지 않았고,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잘 정착되어있지 않다면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형제나 자매를 막론하고 이런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타날 텐데, '장담컨대' 그게 썩 즐거운 일이 아닐 것임을 확신한다. 그 유혹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지 말라.


도사님이라고 해서 손만 잡고 다닌 게 아니다. 2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도사님이 실수하고 나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고, 공원에 가서 손을 잡고 기도했다.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을 힘을 주세요"라고.
만약 혼전순결이 pride가 된다면 그건 또 하나의 '우상'이 될 수 있다. 주님 안에서 자유하길, 회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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