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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ermon Note

사랑의교회 GodSend 철야기도회

by SeolLab.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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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순종 목사님(마태복음 26장 39절)



선택의 결과물로, 이 자리에 나아온 여러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기로 믿음의 선택을 했다.
에베소서 2장 2절의 말씀을 보라.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죄의 종노릇 하던 데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과거에 지옥의 인생, 과부와 같은 인생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우리는 누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억해라.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삶을 살 수 있다.
주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누리는 순종의 선택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지식적 앎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향해 가지고 계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기억해야 한다.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체험하고 기억해야 한다. 체험하기 위해서는 순종이 필요한 것.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선택받아 순종하는 선택을 했을 때, 그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 약속받았다.(창세기 18장 18절), 또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아브라함은, 그의 씨가 번성할 것을 약속받는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뿐인 아들을 죽여야 했을 때, 그는 얼마나 마음이 어려웠겠는가? 그래도 그는 순종했다. 이외에도 골리앗 앞의 다윗, 사도들, 바울을  보라. 그들은 죽어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다. 이들의 인생을 보면 수많은 선택 앞에 한 사람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판단의 기준을 가진 자들이다. 베드로전서 1장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이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할만하시거든 잔을 옮겨달라고, 그러나 자신의 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지게 하시는 순종의 길로 걷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우리 역시 인생의 십자가를 져서 온전히 죽었을 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게 된다."(갈라디아서 2장 20절)
성경은 분명 죽음 이후의 부활을 약속한다. 이 땅의 불확실성, 불안에 허덕였다면 십자가를 선택하는 선택을 통해 부활을 소망하길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와 함께 우리의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는 신령한 은혜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참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명하시고 처음부터 두려움을 주시지 않는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르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친히 보이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십자가에는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길 바란다.

우리의 우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그 십자가 너머에 있는 약속을 보지 못하게, 머뭇거리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길 바란다. 나보다 위대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원함이 우리의 원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원이 드러나길 원한다. 그 원이 더 위대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크심이 드러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꺼이 십자가를 질 수 있길 원한다.

 

 



2부: 이동선 강도사님 (에베소서 5장 1-14절)


에베소서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항구 도시였다. 배가 주요 이동수단이다 보니, 무역이 발달한 곳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게 주된 경제활동이었다. 그 가운데 몸을 파는 창녀들이 매우 많았고, 수많은 죄악들이 팽배한 곳이었다. 에베소서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찔림을 주신다. 도사님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에베소가 그전 과거의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너무나 많아, 오늘날의 모습을 현대판 에베소라고 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저 예배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깨어있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체성을 나누었다.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정체성이 뭐길래 그 자리에 나아가야만 하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8-9)"

흔히 성경에서는 빛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빛'은 주안에서의 '빛'이다.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기에 우리의 삶 가운데 빛이 존재한다. 그 빛은 예수그리스도다. 우리는 죄인이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빛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한다. 여기서 '행함'은 단순 사회적 착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영어성경에는 goodness라고 되어 있는데, 선하심 그 자체인 하나님의 성품인 선함을 의미한다. 9절을 보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엡5:14)" - 우리는 회개하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반감이 들곤 한다. 우리의 상황을 탓할 때가 많다. 우리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 악이 팽배해져 있는 에베소의 상황을 탓한다. 허나 성경은 어떤 역경과 상황 속에서도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말한다. 기억하라. 우리의 정체성은 의인이다. 과거의 어둠에서 떠나 빛의 자녀가 되었다. 영어성경은 더 확실하게 반전의 표현이 나온다.  But now(그러나 이제는). 어둠 가운데 한걸음 한걸음 내디딘 에베소에서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입어 정결케 되었음을 기억하라.

거부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확증되었는데, 나 스스로 다시 죄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교만이다. 택함 받은 우리는 빛의 자녀다. 저 문 열고 나가면 우리는 또 넘어지고 에베소에서의 삶을 반복하며, 똑같은 죄의 굴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오늘 이 새벽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으시며,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기도가 나오지 않는 지체들 있으신가요? 그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만나고 싶으십니까? 그 열정이 있습니까?  
주체할 수 없는 갈망으로 부르짖고 기도했나요 아니면, 그냥 세션의 음악에 힘입어 감정에 기대었나요...


1. 우리 끈질기게 기도하자.
2. 전심을 다해 찬양하자. 이 가사를 통해서, 보혈을 통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자. 이 갈망을 가지고 주님께 고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찾아가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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