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영광은 누구에게서 나타나는가?
Who shall God's glory be revealed in?"
(사무엘상 22장 1~2절 /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에프렘 버클 목사(Rev. Efrem Buckle) 런던시티 미션 대표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18-25)
18 For the preaching of the cross is to them that perish foolishness; but unto us which are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19 For it is written, I will destroy the wisdom of the wise, and will bring to nothing the understanding of the prudent.
20 Where is the wise? where is the scribe? where is the disputer of this world? hath not God made foolish the wisdom of this world?
21 For after that in the wisdom of God the world by wisdom knew not God, it pleased God by the foolishness of preaching to save them that believe.
22 For the Jews require a sign, and the Greeks seek after wisdom:
23 But we preach Christ crucified, unto the Jews a stumblingblock, and unto the Greeks foolishness;
24 But unto them which are called, both Jews and Greeks, Christ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of God.
25 Because the foolishness of God is wiser than men; and the weakness of God is stronger than men.
(1 Corinthians 1:18-25, KJV)
런던으로부터 이곳에 온 게 영광이다. (한국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런던 시티 미션은 유니온 신학교와 협력해 사역해가고 있다. 런던 시티 미션은 데이비드 라 스미스라는 사람을 통해 1800년대에 시작된 미션이다. 이 미션은 가장 약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팀켈러 목사님도 런던 시티 미션을 함께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영국에는 기독교인 수가 적다. 런던은 50%에 달하는 인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들을 이웃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현재 위상이 높아진 대한민국의 낮은 시작점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연약함을 들어 일하신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시고, 약함을 선택하신다. 여러분들은 영국 웨일스에서 한국으로 보내진 선교사인 토마스 선교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했기에 순교할 수 있었다. 토마스 선교사는 자신을 처형하려는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성경을 전해줬고, 처형하려는 사람의 조카가 목사가 되는 기적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은 약함을 들어 사용하시는 역사를 보여주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연약함을 아주 아름답게 하는 데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사용하지 않으셨던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간 사람을 통해 만유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계신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리가 타고 있는 차가 멈추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 누군가가 도와주러 가는데,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보고 '참 미련한 소리 하네'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천국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때 미련해 보이는 것, 인류가 볼 때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사용하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볼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고 나타내는 것으로 십자가를 사용하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재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약점을 사용하셔서 스스로에게 영광 받을 수 있도록 일하신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 선택받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연약했으나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을 본다. 야곱을 봐라. 하나님은 그를 절름발이가 되게 하셨고, 그 약점을 이용해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셨다. 기드온을 보면, 그는 가장 작은 지파의 가장 작은 자였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싸울 군대의 수를 줄이셨다. 왜냐하면 그의 약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는 가장 젊은, 연약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너무 작았기 때문에 골리앗과 싸울 때, 갑옷을 입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강함을 그의 약함을 통해 드러내셨다. 또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로 피신했을 때, 다윗과 함께 한 장정들은 은혜가 필요한 상황, 고통을 겪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정들이 연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장정들이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음을 기억하라. 다윗 왕과 함께 모여 왕국을 세우는 데 쓰임 받았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다윗 왕의 이야기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며 우리는 그의 왕국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상태가 우울한 상태이더라도, 예수님과 그분의 왕국을 세워간다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세워질 수 있다. 우리에게 정말 많은 예시가 있다. 이사야서를 보라. 이사야가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천사를 그에게 보내셔서 그를 정결하게 하셨다. 그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호세아도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의 아내는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호세아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제자도 약했다. 그들은 uneducated fisherman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약함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유명한 사도바울도 마찬가지다. 그가 갈라디아서에, 그의 눈의 가시(육체의 가시)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육체의 가시에 대해 부르짖을 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약함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들어 영광을 드러내심을 기억하라. 물론 하나님은 그 약함을 그저 인정하고 받아주시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약함을 선택해서 사용하신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 말씀을 보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6-27)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께 나아올 때,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재물, 지혜, 가진 것, 가족, 교회조차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영국에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정책이 있다.(뭔가를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복지를 받을 수 없다.) 이러한 복지정책은 이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 손을 열고 우리 스스로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strength는 우리의 weakness를 통해 완성된다. 우리가 너무 연약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용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가장 완벽한 사람 중 하나다. 우리 능력에 기대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하나님은 약함을 찾고 계신다. 그로써 하나님은 그분의 강하심을 드러내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능력에 기대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전통은 따르면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함을 싫어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하심을 사용하기 원하신다. 우리의 강함을 하나님께 모두 내어놓고 항복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대신에 차지하고 있는 나의 강함을 싫어하신다.
ex) 런던시티 미션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중 굉장히 비극적인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 5년 전에 15살의 나이로 아들이 죽었다. 이 이야기를 사랑의교회에서 말하겠다고 하자, 그분이 허락해 주셨다. 그분은 지난 5년간 가장 약함을 경험했으나,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의 강하심을 체험했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을 볼 때,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오르게 된다. 그분은 두 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살인자를 찾았을 때,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를 용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다. 정말 강력한 간증 아니던가? 어떻게 아들을 죽였던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가. 그렇게 희생하고 안아주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우리가 가진 어떤 강함이라도 의존하고 있다면 회개하길 원한다. 우리가 의존하던 큰 좋은 것들을 내어놓기 원한다. 하나님만 신뢰하길 원한다. 사도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에도 그분의 능력으로 3일 만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약함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 우리 하나님을 더 신뢰합시다. 그리고 연약함을 가진 자들을 찾아가고 마을로 초대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신 것을 감사하자.
"(사랑의교회 대학부특강) 미디어로 보는 기독교 세계관"
전국청년연합 '바로 서다' 김정희 대표
단순한 영적인 진리를 단숨에 채득해, 시온의 대로를 달릴 수 있길 소망한다.
이 땅에 실현해야 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얼마나 극명하게 파괴되어 있는지 볼 수 있는 게 미디어(모든 예술, 언론, 도서, 출판, 교과서... 포함)다.
내 삶을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마음이 있으면 내 능력을 넘어 일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으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시간과 마음과 생각과 재물을 주님께 드릴 수 있다. 정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되길 바란다.
- 비전, 사명, 소명의 고민이 있을 터. Calling(소명) 하나님이 능동태로 부르시고, 우리는 불림받았다. 소명은 직업이 아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한 건 당연한데, 미래를 알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르신 그것의 목적은, 우리가 목숨을 걸 만한 것이다. 사명은 소명의 구체화, 소명 안에 우리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그 소명 안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 하면 된다.) 비전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로, 내 사명과 교회의 사명이 연결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시대를 어떻게 보시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본 교회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청년이 교회를 역동적으로 끌고 가야 변화가 일어난다. 교회의 일을 시킨 대로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one of them이 아닌, 영적 후계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영적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이 부흥은 멈춘다.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이 나를 통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은 절대 손해가 아니다. 하나님의 수준과 관점(view)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비전과 사명, 소명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로 결정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나와하기로 결정하신 일이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고 그 일에는 구멍이 난다. 내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 그저 나와 함께하기로 결정하셨으며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생각과 감정과 모든 에너지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본론: 하나님의 창조의 원형을 파괴하기 위한 마귀의 전략
"그 때에 너희가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장 2절)"
마귀의 가장 강력한 도구 = 세상 풍속
반기독교적 문화, 코드를 사람들에게 심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왔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다.(더 글로리, 수리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인 , 라이오네시스... ) - 동성애를 무기로 반기독교를 담아낸 미디어 문화. 창작이 어렵다는 이유로 귀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가 판치고 있다. 이렇게 미디어를 소비하다 보면, 사고가 그렇게 바뀌지 않겠는가?
1. 문화 막시즘과 문화 산업론
(막시즘)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
(배경: 다윈의 진화론 ->사회적 진화론, 산업화의 폐해 및 자본주의 초기 계급 간 불평등.)
이 가운데 갈등구조가 형성됐다.(자본가 계급(지배) <-> 노동자 계급(피지배))
내 사고 체계가 진리대로만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훈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나타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먼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이 나라가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지 않겠는가?
노동자의 계급 혁명(물리적 폭력) -> 자본주의 전복(사유재산 및 복지 폐지) -> 사회주의(- 유물론을 따름. 동물과 인간을 다른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을 죽이는 것을 거리끼지 않음. 과도체제) -> 공산주의(유토피아 완전 평등사회)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과신하면 안 되고, 성급하게 결정 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기독교적 베이스 자유민주주의적 관점과 다르게, 사회주의는 유물론을 따라 인간의 완벽함을 과신했다.
프로이트(무의식과 억압의 방어기제에 대한 성욕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성적 해방에 대해 다루었다.)
막시즘 -> 포스트 문화 막시즘 - 문화와 교육을 중심으로 '핵심기관에 침투에 들어가는 긴 행진(진지전)'의 그람시 전략. 예술, 영화, 연극, 문학, 학교, 신학교, 신문, 잡지, TV 등 문화의 잠식을 통한 긴 행진이 끝날 때쯤 체재 전복의 혁명은 이미 완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중문화는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면, 문화산업은 사회 엘리트들의 계획에 의해 대중의식을 조작하는 것으로 본다. 이로써 사회주의적 사상을 대중에게 이입시킨다. 적그리스도가 오려면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참고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짐승의 표)은 최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화폐, 또 다른 하나는 '통제'(technical 한 기술.)다.
문화막시즘(프랑크프루트 학파 - 비판 이론)의 주요 목적은 음란 문화, 퇴폐문화를 조성해 가정을 파괴하고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다. 비판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기독교와 전통을 비판하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그래도 실체가 있다.(초기 페미니즘에는 남녀의 양분성 구분이 있다. 다름을 구분한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실체가 없다.(내 생각이 답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이 나의 성을 결정하는 이론이다.)
감정은 논리를 타지 않고, 그 감정이 오래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중파 방송을 탄 드라마에서 반기독교적 내용이 나와 그 드라마에 몰입한 사람은 기독교인을 만났을 때, 괜히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결론: 마지막 때에 주를 위해 싸울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때에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게 사명이다. 우리가 부유하다면, 재정적으로 넉넉하다면, 똑똑하다면,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에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다.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에베소서 4장 1절) 우리는 행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복음이 복음답고, 예배가 예배가 예배다워지는 사역을 함께 할 수 있길 소망한다.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결단해 보자.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면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이외에 더 소중한 게 없다."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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