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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PBS

7과 누구를 따를 것인가?

by SeolLab.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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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PBS를 올리지 못했는데, 간만에 제대로 PBS를 하게 되어 이렇게 올립니다.
사실 리더들끼리 에버랜드로 MT를 갔는데, 저는 도저히 참석할 여유가 없어 불참했습니다. 
진짜 가고 싶었고 안가면 후회할 거 알았지만, 에버랜드를 다녀오면 더 후회하겠다 싶어 가지 않았습니다.(물론 기도해보고 결정한 사안입니다.) 어째든 개인적으로 오래 묵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고, 오랜만에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본문: 사무엘하 15장 13~23절

 

13 어떤 사람이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압살롬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다윗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14 그러자 다윗은 자기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서둘러 떠나야겠다. 서두르지 않으면 압살롬에게 잡히고 말겠다. 압살롬이 우리를 잡으러 오기 전에 어서 이 곳을 떠나자. 압살롬은 우리를 해치고 예루살렘의 백성들까지 죽일 것이다."
15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왕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16 왕은 자기 왕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왕은 왕궁을 지킬 후궁 열 명은 남겨 두었습니다.
17 왕은 자기를 따르는 모든 백성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들이 성을 빠져 나갈 때에 그 성의 마지막 집에서 멈춰 섰습니다.
18 왕의 모든 종들이 왕의 곁을 지나갔습니다.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왕의 호위병들도 왕의 곁을 지나갔습니다. 가드에서 와서 다윗을 따랐던 육백 명도 왕의 곁을 지나갔습니다.
19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려 하느냐? 돌아가서 압살롬 왕과 함께 있어라. 그대는 이방 사람이고, 이 곳은 그대의 고향 땅이 아니다.
20 그대가 나와 함께 있던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데, 지금 와서 그대를 우리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가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돌아가거라. 그대의 형제들도 함께 데리고 가거라. 여호와의 은혜와 사랑이 그대와 함께 있기를 빈다."
21 그러나 잇대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살아 계신 여호와와 왕께 맹세하지만, 저는 왕과 함께 있겠습니다. 왕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왕과 함께 가겠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왕과 함께 있겠습니다."
22 다윗이 잇대에게 말했습니다. "정 그렇다면 앞서서 가거라." 그리하여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들의 자녀들도 왕의 곁을 지나갔습니다.
23 모든 백성은 왕의 곁을 지나가면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다윗 왕도 기드론 골짜기를 건넜습니다. 그후에 모든 백성은 광야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의 도망길과 압살롬의 예루살렘 입성길

 

내용관찰

 오늘 본문은 압살롬의 반역 사건의 도입부다. 압살롬의 반역은 여러 장에 걸쳐 다루어진다. 그 과정은 총 6단계로 나뉘며 다음과 같다. 

1) 압살롬의 반역(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이라 선언함)
2)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으로 피신함. 
3) 전사작전 회의에서 아히도벨과 후새가 자신의 계략을 통해 서로 경쟁함. 여기서 다윗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음. 
4) 다윗이 마하나임에 도착, 암몬 족속이 속한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음. 
5) 다윗과 압살롬의 군대 사이의 전쟁이 일어남, 압살롬이 죽음. 
6)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함, 예루살렘으로 돌아옴. 

 

오늘 본문은 1)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본문의 전문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압살롬이 이복 누이 다말과 동침한 암논을 살해한다. 압살롬은 다윗의 눈을 피해 도망갔고, 다윗이 압살롬과 화해하는 뜻으로 압살롬을 불러들이나 이는 진정한 화해가 아니었다. 다윗이 압살롬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고 이를 바탕으로 반란을 주도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문단을 나눠보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먼저 13~18절이 첫 부분, 19~23절이 두번째 부분이다. 이렇게 나눈 이유는, 성경의 문단표시가 그렇게 되어 있기도 하고 첫번째 부분과 두번째 부분에서 주목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 부분인 13~18절은 다윗의 행동과 신하들의 행동이 번갈아가며 비춰진다. 먼저 13절의 신하들은 현 상황에 대해 보고한다. 이어 14절의 다윗은 두려워하고 있고 신하들에게 도망하자고 말한다. 15절에는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말하는 신하들의 충성이 드러나고, 16~17절에선 왕이 도망한다. 이어 18절에는 신하들이 다윗과 함께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두번째 부분은 가드 사람 '잇대'를 주목한다. 19~20절은 다윗이 잇대를 설득하고 있고, 21절은 잇대가 다윗을 설득하고 있다. 22절은 다윗이 잇대를 받으며 앞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그의 신하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이다. 성경의 저자는 다윗의 행동과 처사보다 신하들의 행동에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핵심 반복 구절이 모두 신하들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절의 내용과 21절의 내용이 상당히 비슷하며, 21절의 내용이 15절의 내용을 강화하고 있다. 잇대는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다윗의 살아있음으로 두번이나 맹세를 한다. 이러한 맹세는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진실성을 내보이기 위해 이러한 맹세를 하며, 왕이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도 그 곳에 있겠다고 고백한다. 

 

 

연구와 묵상

 

 먼저 14절에 다윗이 빨리 도망하는 모습을 보면, 다윗 역시 압살롬과의 불편한 관계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압살롬에게로 인심이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에게 보복이 가해질 것임을 확실히 알았던 듯하다. 다윗은 압살롬이 암논에게 어떻게 행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가 얼마나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었는지를 분명히 알았다.  

 16절을 보면 다윗이 그의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갔지만, 후궁 열명을 남겨두었다고 했다. 압살롬이 그의 배다른 자손과, 아내들을 살해할 것을 염려해 데리고 나갔으나 후궁은 남겨 궁을 지키도록 했다. 아마도 후궁은 살해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데리고 나가지 않은 것일텐데, 결과적으로 나단의 예언이 성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사무엘하 12장 11절 -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20절에 잇대를 두고 '너도 어제 왔고'라는 말을 보면, 그가 과거 시글락까지 다윗을 따라갔던 가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순전히 다윗을 지키고 호위하던 친위대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는 이방 사람이었고, 다윗의 말처럼 '동포들도 데려가'는 게 합리적 처사였다. 새번역과 쉬운 성경으로 보면 잇대의 직책에 대해 간략히 알 수 있다. 19절에 "어찌하여 장군은 우리와 함게 가려고 하오? 돌아가 있다가 새 왕을 모시고 지내도록 하시오. 장군은 외국인이기도 하고, 장군은 본 고장을 두고 보더라도, 쫓겨난 사람이니, 그렇게 하시오"  20절에 '장군이 온 것은...' 에서 계속적으로 '장군'이라는 호칭이 등장한다. 이후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 다윗은 잇대를 전쟁 지휘관 중 한명으로 삼는다. 사무엘하 18장 2절(...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게 나가리라 하니) 이 구절은 잇대의 직책을 보여주는 한편, 다윗이 잇대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그리고 잇대의 충성심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보여준다. 

 

 한편 잇대는 포로로 잡혀온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이스라엘에 망명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포로이고서는 장군의 역할까지 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쫓겨난 나그네로, 가족과 온 식구를 데리고 이스라엘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는 이스라엘로 망명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20절에 '어제'라는 표현은 진짜 '어제'왔다는 뜻보다는 근래에 들어왔다는 비유적 표현인 듯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는 최근에 이스라엘로 들어온 용사였으며 그의 무용과 지위를 인정받아 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케이스다. 반란이 일어나는 판국에, 다윗은 얼마나 마음이 초조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잇대에게 압살롬에게로 돌아가 "네 곳에 있으라"고 말한다. 오늘 본문은 분명 잇대와 신하들이 누구를 따르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하지만, 분명 다윗의 태도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용사의 수효와 그들의 힘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시편 3절 1~2절의 내용을 보라. 

1) 여호화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기도의 자리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을 절실히 찾고 있다. 그의 참담한 심정이 정말 잘 드러나는 구절인데, 그는 그런 참담함 속에서도 여호와를 찾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잇대에게 돌아가라고 말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그렇게 보기 어렵다. 자포자기한 사람은 도망가지 않는다. 자포자기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자포자기한 사람은 대적들이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해'라고 말할 때 그들의 말에 수긍한다. 자포자기한 사람은 안일함과 방종으로 상황을 일관하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도를 생각하지 않고 회피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 재밌는 것은, 다윗은 압살롬을 왕으로 부를 이유가 없는데도 '왕'으로 부른다. 압살롬에 대한 인정이었을까? 대적들이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는 말에 대한 어느정도의 수긍의 표현이 드러난 것이었을까? 글쎄.. 그것보단 잇대의 입장에서 고려한 다윗의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잇대는 타국에서 망명한 용사였기에, 반역이 일어난 현 시점에서 다윗이 아닌 압살롬을 따르는게 현명한 처사다. 그의 그러한 입장을 고려해 압살롬을 왕으로 섬기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어 다윗은 은혜와 진리가 잇대에게 있기를 바란다면서 축복한다. 이는 다윗이 자신을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섭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축복이었다.

 

 

 잇대의 맹세를 보면 그가 개종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블레셋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 잇대가 맹세하기까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윗의 축복이 한 몫하지 않았겠는가? 다윗은 이방인의 마음까지 감동시킬 수 있는 신앙 인격의 소유자로, 잇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잇대의 이러한 고백은 다윗에게도 큰 위로였다. 믿음의 용장이었던 다윗도 위기의 순간에 잇대의 충성을 통해 평생 가슴에 새겨지는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느낀점


 잇대의 고백만 보고, 이 사람이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다윗의 일관된 믿음과 신앙, 그리고 그의 여전한 아우라를 보고 놀란 본문이었다. 그는 가드 사람 잇대 그러니까 이방인 마저 신앙고백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밧세바 사건으로 인한 그의 죄가 하나님께 큰 상처를 냈더라도, 압살롬과 진정으로 화해하지 않는 죄를 지었더라도(본인도 그걸 인지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방종의 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행동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있다. 그래서 그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잇대가 충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잇대가 압살롬의 편에 서지 않고 다윗의 편에 설 수 있었던 까닭은 다윗의 모습 때문 아니었을까. 

 

결단과 적용 

 

오늘 PBS 교재는 잇대에 주목하라고 하며, 고린도후서 5장 7절을 인용구절로 넣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그렇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그 충성을 다할 때, 앞길이 보장되고 순탄함이 보장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당장에 그 길은 내 앞길을 보장하지 않고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죽는 날까지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그분이 내 인생을 책임지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내 믿음을 절대로 내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것이 바로 믿음으로 행하는 삶이고, 충성을 다하는 이유다. 

오늘 본문에서 잇대는 다윗에게 충성을 보였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충성을 보였다. 잇대뿐만 아니라 다윗도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했다. 그가 자신의 잘못으로 미끄러질 때,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리고 원수들이 그 위기를 보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나아갔다. 용사의 수효를 의지하지 않았고, 그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용사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명의 용사라도 자신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처사로 보이나, 다윗은 경험적으로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뼛속 깊이 전쟁에서 승리한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그 본능적, 경험적 확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확신은 그의 삶 속에서 친히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앞으로 약 3주간 정말 많은 과제와 시험, BOB 면접절차를 밟아야 한다. 내 앞에 커다란 산 수십 개가 놓인 기분이다. 산 하나도 그냥 우면산 정도가 아니라 한라산 정도 되는 듯하다. 백두산이나 에베레스트라고 하고 싶은데 안올라가봐서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도 나는 낙심하지 않을 것을 결단한다. 내 삶 가운데서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기를 결단한다. 내 뼛속 깊이 내재된 승리의 경험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겠다. 
주변에서 뭐 그렇게 멍청하게 교회다니는 식으로 시간낭비하냐고, '너 그러다 진짜 훅간다' 는 식으로 말할 때,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멍청하게 행동한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정이 있지만, '하루에 언덕 하나만' 원칙을 기억하겠다. 
내가 산에 들어가서 베어올 나무는 이미 정해져있다. 다른 나무에 눈을 들이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나무가 있다면 그걸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다하겠다. 그 나무를 베기 위해서라면 죽을 힘을 다해 베겠다. 다시말해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겠다. 나는 매일매일에 마침표를 제대로 찍기 위해 살고 있으며, 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건 변함 없으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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